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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스팸’? 대중 전단과 벽낙서의 시작– 로마와 폼페이 벽화 속 광고·전언 흔적

by 루루젤라 2025. 5. 20.

    [ 목차 ]

오늘은 대중 전단과 벽낙서의 시작을 로마와 폼페이 벽화 속 광고와 전언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고대 스팸’? 대중 전단과 벽낙서의 시작– 로마와 폼페이 벽화 속 광고·전언 흔적
‘고대 스팸’? 대중 전단과 벽낙서의 시작– 로마와 폼페이 벽화 속 광고·전언 흔적

 

 

로마 거리의 ‘광고판’? – 벽에 새겨진 정보의 흔적들


현대 도시를 거닐다 보면, 벽에 붙은 포스터나 공공 게시판, 심지어 전신주에 덕지덕지 붙은 전단지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때로는 눈에 거슬리고, 때로는 흥미로운 정보가 담겨 있기도 하지요. 하지만 이러한 '길거리 정보'의 문화는 사실 현대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2,000년 전 로마 제국의 거리에서도 유사한 모습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벽에 새겨진 각종 벽낙서와 벽면을 활용한 공공 정보 게시 방식이 그 주인공입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인쇄술이 없었기 때문에,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가장 직접적이고 시각적인 방식은 ‘벽에 쓰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의 주요 도로변이나 건물 외벽, 상점의 벽면에는 다양한 메시지들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중 일부는 정치 선전이나 상업적 광고였고, 일부는 연인에게 보내는 감성적인 구절, 혹은 경쟁 상인을 헐뜯는 비방글이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폼페이 유적에서 발견된 수많은 벽낙서는 고대 로마 시민들이 얼마나 활발하게 이 공간을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활용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플라쿠스에게 투표하세요, 그는 훌륭한 빵 굽는 사람입니다!"라는 문구는 정치적 선거 홍보의 일종이자, 동시에 직업적 신뢰를 강조한 일종의 브랜드 마케팅이기도 합니다. 또한 "아프로디테가 있는 이곳에서 최고의 맥주를 팝니다"는 구절은 고대 펍이나 여관 주인의 상업 광고로 해석되기도 하지요.

폼페이의 주택 벽, 여관 벽, 심지어 공중화장실 벽에 이르기까지 낙서는 다양한 계층과 목적을 대변합니다. 글씨체나 문구의 수준으로 보아 문맹률이 낮았음을 짐작할 수 있고, 시민들이 정보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능동적 참여자였다는 사실을 방증합니다.

이러한 벽 낙서는 단순한 낙서가 아닌 '고대의 공공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습니다. 지금의 SNS나 댓글, 혹은 게릴라 마케팅과 같은 역할을 했던 셈입니다. 그 속에는 고대 로마인의 생활, 유행, 정치, 소비 패턴이 고스란히 녹아 있으며, 우리가 단순히 ‘유물’이라 부르는 벽 하나에도 수많은 사회적 대화가 얽혀 있는 것입니다.

 

폼페이 유적에 새겨진 메시지들 – 광고, 정치, 연애가 얽힌 벽면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대폭발로 하루아침에 매몰되었지만, 덕분에 고대 도시의 일상이 유례없이 생생하게 보존될 수 있었습니다. 특히 폼페이의 벽면 곳곳에서 발견된 5,000건 이상의 낙서는 고대 로마인의 삶과 사고방식을 들여다보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됩니다.

폼페이 벽면 낙서의 주요 특징은 주제의 다양성입니다. 정치적 선동, 상업 광고, 고객 후기, 유머, 시사, 철학, 연애 시, 욕설, 종교적 선언 등 그야말로 인간의 감정과 필요가 총망라되어 있습니다. 특히 선거철이 되면, 벽에는 유권자에게 자신을 지지해달라는 내용의 정치 낙서가 넘쳐났습니다. "마르쿠스를 시의원으로!"라든가, "게미니우스를 지지하는 빵 장인들의 연합!"이라는 식의 문구는 조직적 홍보 활동의 일환이었습니다.

상업적인 광고도 인상 깊습니다. 어떤 포도주 상인은 "마지막 병이 다 팔리기 전에 오세요"라는 재치 있는 문구를 남겼고, 식당이나 매춘굴의 주인은 자신의 가게가 얼마나 인기 있는지를 자랑하는 고객의 후기를 써 넣었습니다. 오늘날의 별점 리뷰나 후기 마케팅과 유사한 방식이라 할 수 있죠.

흥미로운 점은 연애와 관련된 벽낙서입니다. "나는 루시아를 사랑한다", "클라우디아, 너는 내 삶의 빛" 같은 문구는 벽을 통해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이들의 열망이 담긴 결과입니다. 때론 서로 다른 남성들이 한 여성에 대한 감정을 같은 벽에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낙서를 통해 벌어진 사랑 싸움도 있었지요.

또한 이런 낙서는 사회적 위계나 정치, 종교적 갈등까지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일부 낙서에서는 특정 계층이나 외부 민족을 비난하거나 조롱하는 내용도 있으며, 종교 신을 찬미하거나 저주하는 문구도 적지 않게 발견됩니다.

폼페이의 벽은 말 그대로 하나의 ‘고대 SNS 플랫폼’이자 정보의 샘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상품을 홍보하고, 누군가는 지지 정당을 표현하고, 누군가는 마음속 감정을 기록하며, 또 누군가는 타인을 비판하거나 조롱했습니다. 이들은 종이 없이도, 인터넷 없이도 매우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가 스마트폰에 남기는 포스트, 댓글, 리뷰와 다를 것이 없습니다.

 

‘고대 스팸’? 대중 전단과 벽낙서의 시작– 로마와 폼페이 벽화 속 광고·전언 흔적
‘고대 스팸’? 대중 전단과 벽낙서의 시작– 로마와 폼페이 벽화 속 광고·전언 흔적

 

고대 낙서에서 보는 오늘날의 커뮤니케이션 – 스팸? 문화? 창의성?


오늘날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수백 건의 메시지를 마주합니다. 이메일로 들어오는 광고, 거리의 포스터, SNS에 자동으로 올라오는 추천 콘텐츠, 댓글과 리뷰, 짧은 메모까지… 이처럼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은 ‘정보의 파편들’은 때로는 유용하고, 때로는 스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풍경이 고대 로마의 거리에서도 이미 일어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폼페이의 벽낙서, 로마 거리의 낙서 문화는 현대인의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놀라울 만큼 닮아 있습니다.

우선, 고대의 낙서는 공식 매체가 아닌 ‘비공식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에서 오늘날의 댓글, 개인 블로그, 포럼 게시글 등과 유사합니다. 당시에는 신문이나 라디오, 방송 같은 매스미디어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광고를 직접 손으로 벽에 새겨 넣었습니다. 벽은 곧 게시판이었고, 이 게시판은 특별한 허가 없이 누구나 쓸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이는 디지털 시대의 ‘오픈 플랫폼’ 문화와도 연결됩니다.

 

당시에도 상업 광고는 가장 흔한 낙서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포도주 상인은 "이 골목의 2번 가게, 최고의 포도주를 팝니다!"라는 문구를 남겼고, 목욕탕 업주는 "여기선 비누를 무료로 제공합니다!"라는 홍보 문장을 새겼습니다. 이는 지금으로 치면 전단지 마케팅, SNS 상점 게시물, 심지어 유튜브 영상 전 광고처럼 상업적 목적이 분명한 콘텐츠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지금과 다른 점은 광고의 대상이 지나가는 모든 시민이며, 광고의 수단이 ‘벽면’이라는 점입니다. 즉, 공공 공간에 개인의 정보가 파고드는 방식이 당시에도 존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낙서들을 단순히 ‘고대의 스팸’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사실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많은 벽낙서에는 사람들의 감정, 유머, 철학, 때로는 시와 그림까지 담겨 있었습니다. 한 시민은 "살아 있다는 건 마시는 것, 먹는 것, 사랑하는 것"이라 적었고, 어떤 이는 "인생은 짧다. 오늘의 햇살을 즐겨라"는 시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는 현대의 SNS에서 볼 수 있는 감성글, 명언 콘텐츠와 흡사한 흐름을 보여줍니다.

또한 벽낙서는 사회적 대화의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티투스를 사랑한다"는 문구 아래에, 누군가 "그는 너를 사랑하지 않아"라는 답변을 써놓고, 다시 다른 이가 "사랑은 항상 복잡하지"라며 덧붙이는 식의 ‘낙서 대화’가 진행되기도 했습니다. 이는 지금 우리가 유튜브나 블로그 댓글창에서 경험하는 '댓글 릴레이' 혹은 커뮤니티 토론과 유사합니다.

때로는 이러한 낙서가 사회적 갈등이나 편견을 드러내는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정 민족이나 계층을 비난하는 문구, 정치적 선동, 종교적 대립을 반영한 메시지들도 존재합니다. 이는 오늘날의 혐오 표현, 온라인상의 악성 댓글, 정치적 분열과도 연결되는 부분입니다.

 

이처럼 고대의 낙서는 단순한 낙서 이상의 의미를 지녔으며, 공공의 의견 표출 창구로서 기능했습니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고대의 낙서가 창의성과 예술성까지 갖췄다는 사실입니다. 일부 낙서는 뛰어난 필체와 시적 표현을 지니며, 당시 사람들의 언어 감각과 미적 감수성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이것은 오늘날 인터넷 밈(meme), 패러디 콘텐츠, 팬아트와 같은 디지털 창작물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사람들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자신만의 스타일과 감정을 담아 표현하는 것을 즐겼던 것이죠.

요컨대, 폼페이와 로마의 벽낙서는 고대인의 감성과 사회, 문화, 기술의 종합적 산물이었습니다. 이는 오늘날 디지털 커뮤니케이션과 본질적으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메시지를 직접 작성하고, 공공의 공간에 게시하며, 타인의 반응을 유도하고, 때론 논쟁을 벌이며, 정보를 나누고 창의적으로 표현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지금의 블로그, SNS, 유튜브, 인터넷 커뮤니티와 동일한 구조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폼페이의 벽은 고대인의 감정과 정보가 뒤섞인 하나의 ‘정보의 벽’이자,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원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도, 벽 대신 스크린을 쓰고, 돌 대신 키보드를 두드릴 뿐, 그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표현하고 싶은 욕망, 전하고 싶은 메시지,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의 본성입니다.

폼페이와 로마의 벽낙서를 단순한 스팸의 시작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은 단절된 옛날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는 인간의 소통 본능이기 때문입니다.